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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 야만적인 앨리스씨 '

by 정보탐색대 2024. 1. 18.

황정은, ' 야만적인 앨리스씨 '
황정은, ' 야만적인 앨리스씨 '

 

야만적인 앨리스씨 는 황정은의 장편소설입니다.

특유의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소설,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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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적인 앨리스씨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황정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새로운 좋은 소설의 기준이 되며, 그 매력은 감독과 문체에서 상투성을 떨쳐내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신중히 쌓아 완성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황정은 작품은 여러 번 읽을수록 의미가 더 풍부해지며 즐거운 해석의 여러 겹을 제공하며, 동시에 특유의 감각과 리듬으로 우리를 매료시키는 노래처럼 직관적으로 귀에 착 달라붙는 특별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처음 선보일 때 황정은은 두 권의 소설집과 첫 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한 젊은 작가였습니다. 그 당시, 그의 이야기는 "오뚝이와 지빠귀"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즐기는 이들, "대니 드비토"처럼 아름다운 서정을 감상하는 이들, 그리고 "백의 그림자" 속 인물들의 감정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기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읽는 우리는 황정은의 작품세계에서 새로운 방향을 예고하는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이 소설은 우리 자신이 둘러싼 세계의 변화와 연관된 주체 및 목격자로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그런 현실에 대한 뚜렷한 인식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품고 있습니다.

 

 서평

 

작품이 출간된 당시,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한 채널을 통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훌륭한 소설들이 대개 그런 식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데, 『야만적인 앨리스씨』 역시 하나의 필사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렇게 마무리된다"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2018년에 출간된 일본어 번역본은 "독자의 일상을 뒤흔드는 무서운 소설"이라고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소설은 '내'와 '외' 그리고 '다시, 외'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 이름은 앨리시어, 여장 부랑자로 사거리에 서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어린 앨리시어는 '고모리'에서 살던 소년으로, 어떤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을 잃은 후 여장 부랑자가 되어 사거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고모리에서 자란 앨리시어는 어두운 밤처럼 어두운 곳으로 여겨지며, 탈출을 시도하더라도 둘러싸인 공간으로 다시 떨어집니다. 앨리시어 형제는 어머니의 폭력을 당하며 살아가는데, 이는 고모리의 주민들과 아버지까지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자그마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변해갑니다. 이는 "씨발됨"이라고 표현되며, 이 일상적이고 무심한 폭력은 지속되면서 앨리시어 형제에게는 더 큰 상처를 남깁니다. 그들은 아버지나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노력하지만, 거의 무반응에 직면하면서 희망은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듣는 사람을 찾는 것은 앨리시어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그들에게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씨발' 이외의 말을 전하려는 노력으로 느껴집니다.

앨리시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그래서 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그 이야기에 전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