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일본 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일본의 빛과 어둠을 다룬 책입니다.
일본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는 필독서이네요!
그럼 책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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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일본
긴 세월 동안, 일본은 외국인들에게 이국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나라로 여겨졌다. 특히 서양인들을 대접하는 일본인들의 환대는 그들이 일본에 적응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일본 경험을 기반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책들은 주로 일본에 대한 경외나 비판, 밝고 어두운 측면을 다루었다. 알렉스 커의 "사라진 일본"은 경외와 비판, 그리고 빛과 어둠을 모두 담고 있다.
1964년, 열두 살 때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저자는 마치 마법처럼 일본에 끌려들어 이곳에 정착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외부의 변화와 도시화로 인해 그는 이곳이 자신이 원했던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짐을 챙기려고 할 때,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갑자기 서예를 배우게 되거나 가부키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저자는 십대 시절부터 일본어를 배우며 한자에 매혹을 느꼈고, 이것은 그가 다른 외국인들과 차별되는 지점이었다(예일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중국학 석사과정을 이수했으며, 이 책도 직접 일본어로 썼다). 더욱이 그는 다른 여행자들처럼 교토를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추하다"고 말한다. 그는 교토 사람들의 코를 높이지 않고, "위축되고 불안해하는 기색"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탑처럼 정교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타인에 대한 짜증과 질향이 숨겨져 있다고 그는 느낀다.
요즘 우리는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형용한다. 이 용어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잃었다는 의미이지만, 저자에게 일본이 진정으로 잃은 것은 아름다움과 경치이다. 그는 일본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노력하지만, 현대화를 추구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그 미소의 흔적이 사라져간다. 그의 시선은 사물과 풍경을 포착하려 하지만, 현대화를 향해 달려가는 일본인들은 미소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이 책은 미의 상실과 쇠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아름다움이 덜 손상된 계곡을 찾아 들어가 빈집을 백 군데 이상 탐험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는 일본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그것을 상상력으로 메울 준비가 되어있다. 결국 그는 마음에 드는 빈집을 찾아 사게 되는데, 거기에서 먼지가 10센티미터 이상 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먼지 한 조각 한 조각을 쓸고 광을 내는 과정에서 역사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시골 사람들이 달아난 곳에서 한 외국인은 사라진 일본을 목격한다.
그 집에서 살면서 일본 사회에 녹아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쌓았다. 미술품 수집가로서의 경력도 쌓았고, 비즈니스 센스를 키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주말마다 교외의 집에서 동아시아의 문인처럼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한 삶이 일본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이 책에 담기게 되었다. "빈집 사냥"부터 시작해 도쿄의 파친코 분석까지, 저자는 우리가 갖고 있던 일본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이 책은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신초학예상을 받았다. 논픽션 부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았으며, 심사위원인 시바 료타로가 저자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알렉스 커의 문장은 가부키 배우 다마사부로의 춤을 떠올리게 한다. 모순, 이중성, 상반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동시에 알기 쉽고 밝은 일본어가 흘러나온다. 하나는 추악함을, 다른 하나는 아름다움을 담은 유니크한 일본어 문장의 표현은 그가 창조한 것이다.
서평
이 책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방인이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빈집 안에 몇십 년, 몇백 년 전의 일본인의 삶을 엿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970년대에는 이미 일본 지방의 집들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시골에서의 삶이 전망 없어 불안했던 사람들은 싱크대에 수저를, 화장실에 칫솔을 그대로 두고 급히 떠났습니다. 그 덕분에 저자는 쓰루기산에서 시작해 가가와현, 고치현, 도쿠시마현 등에서 백 채 이상의 집에 들어가서 옛 주인들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빈집을 사기로 결심했을 때, 웬만한 곳은 이미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으로 덧붙여져 볼 가치가 없었고, 10년 이상 방치된 집들은 바닥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1973년 1월, 그는 이야 계곡 동쪽에 있는 쓰루이 마을에 갔습니다. 거기서 18세기에 지어진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그가 찾던 집이었습니다. 17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그 집을 사서 6월에 입주하면서 그 집에 "치이오리篪庵"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때 그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 집에서 대규모 수리와 청소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지 제거 작업은 마치 보물을 찾는 것처럼 흥미로웠습니다. 집 안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물건 중 하나는 1950년대에 그 집에 살던 젊은 여성의 일기였습니다. 그 일기에는 마을의 가난과 어두운 집, 도시에 대한 그녀의 갈망이 아프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기는 그녀가 18세에 돌연 멈추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가출하고, 그녀의 조부모는 손녀가 돌아오길 바라며 문에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적어 놓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부적은 저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 집은 가로 네 칸 세로 여덟 칸 정도의 넓이를 가졌습니다. 그 안에는 마루, 툇마루, 침실, 부엌, 작업 공간 등이 있었습니다. 집은 숨이 막힐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젊은 여성이 도시의 형광등 빛을 피해 가출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미닫이 문을 모두 철거한 후에는 그곳이 환히 밝게 빛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그곳에서 앉아서 다니자키 준이치의 "그늘에 대하여"를 떠올렸습니다. 다니자키는 그늘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는 현대 일본을 애통하며 묘사하지만, 저자가 치이오리에서 느낀 그림자와 어둠은 지나치게 짙었습니다.
이것이 일본이 형광등의 나라가 된 이유일까? 형광등과 긴자의 화려한 간판들에 너무 익숙해져서 영화 예술에서 색상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단조로운 조명만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골 집에서 저자의 생각은 전체 일본 사회로 확대되었습니다.
치이오리의 내부를 복원한 후에는 지붕을 수리해야 했습니다. 이 집의 지붕은 스스키(억새)라는 가야 짚을 사용하여 만들어져 있었는데, 지붕과 지붕장이 모두 사라진 현대에는 지붕 수리 작업이 큰 비용과 노력을 요구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는 또 다른 일본의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일본이 초가지붕을 거부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전통을 외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교토의 황궁과 이세신궁의 지붕이 초가로 되어 있는 이 나라가 특이한 자연 소재를 무시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이 저자에게는 "심장을 때리는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빈집을 탐험하면서 일본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이야 계곡에 발을 디뎠을 때에도 이미 환경 파괴가 진행 중이었지만, 이상한 것은 시민들의 저항이나 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파괴가 가속화됨에 따라, 그는 "이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나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놀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간판이나 전선, 콘크리트가 보이지 않는 곳은 없어?" 그의 눈에는 시골이 얼룩투성이로 보였습니다. 3만 개의 강과 하천 중 단 세 곳만 빼고 모두 댐이 설치되었고, 해안선은 콘크리트로 덮여 있었습니다. 일본은 산림 관리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지만, 전깃줄을 묻지 않아 거대한 철탑과 전봇대가 도시 풍경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관능성과 형식미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은 이야기입니다. 가부키에서 다도, 파친코로 뻗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자연과 경관이 파괴되면서, 저자는 추상적인 세계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가부키 배우 다마사부로와의 만남을 통해 저자는 수년 동안 가부키 극장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가부키는 일본 문화의 두 가지 축, 즉 관능성과 형식미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쪽에는 에도 시대의 관능적인 성 문화, 다른 한 쪽에는 예술과 삶을 순수한 형식으로 다듬어 나가는 미학이 있습니다. 일본 예술은 이 두 가지 경향의 조화로운 경쟁으로 인해 발전해왔습니다. 현재에도 이러한 경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정원을 만들 때 모든 것을 갈퀴로 긁어놓는 "멸균 과정"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파친코와 외설적인 심야 TV 방송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가부키에서 얻은 미적 감각을 통해 저자는 다도, 서예, 그리고 미술품 수집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갔습니다. 그의 미적 감각은 일본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기능하지만, 그는 언제나 경계인으로서의 자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골 폐가의 바닥을 소독하고 닦아내는 과정에서도 한 줌의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며, 도시의 세련된 문화로 들어가 가장 정교한 형식미를 감상하는 것처럼, 이 책 전체는 항상 주요한 부분과 주변을 아우릅니다.
저자는 과거에 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한 적이 있지만, 그의 진정한 직업은 미술품 수집가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떻게 예술 감각과 아이템 선택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과정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처음 빈집을 구입한 때부터, 그는 그 집을 민속 박물관처럼 톱, 바구니, 바가지, 반닫이, 대나무 조각 등으로 가득 채워 나갔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는 교토 교외에서 하나의 폐가를 더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교토에 올라가면서 미술품 수집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그의 컬렉션은 시키시와 단자쿠에서 시작되었고, 점차 족자, 병풍, 도자기, 가구, 불교 조각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금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저자는 가치 있는 작품을 구매하려면 자신이 소유한 아이템을 조금씩 팔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어느새 미술품 거래상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컬렉션 능력이 오로지 한 가지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아시아 미술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그들의 무관심이 지속되는 한 나는 계속해서 컬렉션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